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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게 내 말 벗이야"…81살 달동네할머니 7살 증손주와 겨울나기

삼척시사회복지협의회 0 8,970 2011.12.19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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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동네 쪽방촌 이웃들의 겨울 
 [CBS 조태임 기자] 매서운 추위에 달동네 쪽방촌 이웃들의 겨울은 더욱 혹독한 시간이다. 
 서울에 얼마 남지 않은 달동네인 노원구 중계동 104 마을. 오르막길을 한참 올라가면 유모(81) 할머니 집이 나온다. 
 허리가 구부정한 할머니는 오후 5시만 되면 유치원에 다니는 7살짜리 증손자를 데리러 언덕길을 내려온다. 
 혹시나 누가 잡아가면 어쩌나, 사방으로 다니는 차에 손자가 다치면 어쩌나는 걱정에 영하 5도 아래의 추운 날씨에도 마중을 빠뜨리지 않는다. 
 유 할머니는 추운 방안에서 하루 종일 증손자를 기다리다가 손자가 오면 그 때서야 전기장판을 켠다. 전기세를 아끼기 위해 옷을 껴입지만 옷 사이로 들어오는 바람은 막을 수가 없다. 
 몇 해 전 손녀가 병으로 세상을 떠난 뒤부터 손녀의 어린 아들을 할머니가 돌보고 있다. 
 생활은 예순 먹은 딸이 학교앞에서 순대를 팔아 벌어오는 돈으로 근근이 버티고 있다. 
 사위는 집을 나가 소식이 없고, 작년 봄에 아들을 떠나보낸 할머니가 기댈 곳은 딸 뿐이다. 
 가난을 버텨 내기에는 겨울이 원망스럽다. 
 유 할머니는 할아버지를 먼저 떠나보낸 데 이어 병을 앓던 아들도 저 세상으로 떠나 보내야 했고 손주 사위도 말하기 어려운 사정으로 함께 살지 못하고 있다. 
 유 할머니는 “날이 따뜻할 때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먹고 살면 되는데 날이 추우니까 더 꼼짝을 못하겠어”라고 힘들게 말을 이어 갔다. 
 그래도 무럭무럭 커가는 증손자를 보면 힘이 솟는다. 
 날이 추워도 손자 마중은 빠지지 않는다며 증손자를 쳐다보며 “저게 내 말 벗이니까…”라고 말끝을 흐리는 유 할머니의 입가에는 희미하게나마 환한 웃음이 묻어 났다. 
 종로구 창신동의 쪽방촌에는 좁은 골목 사이로 한 사람 겨우 들어갈 공간의 방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1인용 전기장판과 TV만으로 꽉 찬 한 평 반 쪽방에 15년간 생활한 김모(66)씨. 
 공사현장에서 일용직으로 일하는 김 씨의 12월 달력에 일 한 날을 표시한 동그라미 5개가 그려져 있다. 
 겨울철 공사현장에 일자리가 나지 않아 돈 벌기가 어렵다. 
 쪽방촌에 사는 사람들 대부분이 공공근로나 일용직에 종사하기 때문에 겨울철 딱한 사정은 마찬가지라고 한다. 
 김 씨의 이웃 중에 돈이 급한 사람들은 수급품으로 나오는 쌀을 식당에 반 값에 팔기도 한다. 
 일을 나가지 않을 때는 집에서 주로 시간을 보내는데 보일러를 틀어주지 않기 때문에 전기 장판에 의지할 수 밖에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주인집에서는 기름값이 많이 나온다며 하루에 두 시간 정도만 저녁 시간에 보일러를 틀어준다. 
 보일러가 고장나도 해도 수리를 안 해 주고 전기료가 많이 나오는 히터 같은 것은 아예 사용 금지다. 
 주인에게 춥다고 말을 하면 되돌아오는 답변은 “나가서 다른 집으로 가라”는 말이다. 
 방 안에 둔 물이 얼 정도로 추운 쪽방촌 이지만 그 곳에 사는 김 씨의 마음만은 따뜻하다. 
 교회에서 나오는 이불이나 전기 장판을 받아뒀다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일을 안 하고 술만 마시는 이웃에게 기술을 가르쳐 주기도 하고 교회에 봉사를 하기도 한다. 
 김 씨는 “춥기야 춥지만 마음의 여유가 없으면 더 춥게 느껴지는 것 같다”며 여유를 뽐내기도 했다. 폐암 수술 뒤 집에서 쉬고 있는 임 모(69)씨는 집안에 피어 놓은 연탄난로 앞에서 인스턴트 밥을 차린다. 
 개인 사업을 하던 임 씨는 사업 실패 후 올해 암까지 얻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간병인 일로 하루 일당 6만원을 벌어오는 부인에게 미안한 마음이 크다. 
 창문에 현관 문에 두 겹 세 겹 비닐을 쳐 놓은 임 씨는 “후원단체에서 들어오는 연탄이 있어 그나마 사정이 괜찮다” 며 “기름값이 너무 비싸 보일러는 엄두도 못낸다”고 했다. 
 임 씨는 “옆집에 사는 부부가 지난 해 연탄가스로 숨진 일이 있은 뒤부터 환풍기를 달았다”고 말했다. 
dearhero@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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