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노숙인이 몇 명 있냐고요?
"혹한으로 고통받는 노숙인...함께 나눌 일은 없는지 돌아보았으면"
이정규(등록/발행일: 2011.01.31 07:29 )
작년 말, 전국의 노숙인 복지시설은 각 지역을 중심으로대대적인 거리노숙인 실태조사를 진행했습니다. 노숙인의 지원이 시작된 지 10년이 훌쩍 넘었음에도 정확한 노숙인의 숫자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고, 이는 각 지역에 노숙인 지원정책의 불균형을 야기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거리노숙인의 수를 정확하게 파악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일단 노숙인들은 주거지가 없기 때문에 시간대별로 배회하는 경향이 매우 크고, 각 지역에 분포되어 은닉되는 경향이 있어 발견하는 작업에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서울시 송파구의 한 지역을 담당하여 심야시간대 실태조사를 진행했습니다. 혹시 놓치는 인원이 있을까 지하철역, 공중화장실, 은행예금 인출부스 등 구석구석 살펴봤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노숙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매일 서울역이나 용산역, 영등포역 같은 주요노숙지역을 중심으로 상담을 집중하는 상황에서 솔직히 당황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인력이나 거리의 문제 같은 물리적인 한계로 인해 더 이상 상담지역을 확장할 수 없는 상황이 안타까웠습니다.
그렇게 집계된 노숙인 실태조사 결과를 통해 전국의 거리노숙인 수가 1,500여 명에 달하고, 서울시에만 1,100명이 상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물론 이 수치도 정확한 수치는 아닙니다. 전국의 모든 지역을 샅샅이 살펴가며 인원을 파악할 수 있는 물리적인 환경도 되지 않았고, PC방이나 찜질방, 쪽방, 고시원 등 노숙 위험군까지 고려한다면 이 수치는 더욱 불어날 수 밖에 없겠지요. 하지만 기존에 공공기관 중심으로 파악하고 있던 수치의 두 배에 달할 정도로 많은 인원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많은 점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사회의 빈곤의 문제가 생각보다 매우 심각하다는 점과 더불어, 이에 대한 보다 폭 넓은 사회복지정책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점이기도 할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노숙인이 생겨나는 수 만큼 우리 사회의 공동체 의식이 약화되고 있다는 점이 더욱 걱정스럽습니다. 과거에는 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공동체가 형성이 되어 구성원간의 자조가 활발했지만, 산업화, 정보화되어 핵가족 중심의 오늘날에는 아파트 내 옆집에 누가 사는지조차 모르는 상황 속에 공동체성은 점점 잃어버릴 수 밖에 없는 모습을 흔히 보게 됩니다.
독거 어르신이 홀로 외로이 세상을 떠나신 후 무관심 속에 며칠이 지난 후에 발견되고,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버려지는 아이들, 그리고 하루하루 연명하기 위해 고물을 주워 당신의 10배는 되어 보이는 리어카를 힘겹게 끌고 다니시는 어르신들... 괄목할만한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어두운 단면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사회를 살아가는데 ‘노숙인이 몇 명이냐’는 수치적 의미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 주변에 혹여나 내가 모르는 사이에 어려움을 겪는 이웃은 없는지, 내가 함께 어려움을 나눌 수 있는 일은 없는지 찾아보는 여유는 매우 중요할 것 같습니다.
그러한 ‘사람다운’ 유대 속에 맞잡은 손은 어려움을 겪는 이에게 몇 만원의 금전적 도움 이상의 큰 기적을 만들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또한 영하 10도를 오르내리는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에서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밤을 지새워야 하는 사람들의 수도 그만큼 줄어들겠지요.
숨을 한번 크게 고르시고, 주변을 한번 돌아보십시오. 여러분의 따뜻한 손을 간절히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과감히 손을 내밀어보세요. 그 맞잡은 손과 손 사이의 체온이 잔혹하리만큼 매서운 겨울추위를 따스하게 녹일 것입니다.
노숙인이 몇 명이냐고요? 그때그때 다릅니다. 여러분이 따뜻하게 내밀어주신 손에 달려 있습니다.
※필자인 이정규 노숙인다시서기센터 사회복지사는 노숙인다시서기지원센터에서 근무하며 '두바퀴희망자전거' 등 노숙인들의 자활을 위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지난 2007년 1월 한국사회복지협의회, 삼성전자, 국민일보가 공동 주관하는 '제37회 새내기사회복지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